반응형

인터넷을 흔히 정보의 바다라고 칭합니다. 하지만 과거 인터넷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이제 사라지고 이제는 정보 과잉, 정보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로 인해, 사람들은 이제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취사선택을 알고리즘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바야흐로 확증 편향 시대가 열렸습니다.
또한 1인 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인터넷에 떠도는 얕은 정보, 독단, 아집, 말재주로 무장한 가짜 전문가가 진짜 전문가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최고 권력자가 나서서 ‘대안적 사실 (alternative facts)’이라는 정체 불명의 말을 통해 거짓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안티 백서 등 반지성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시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시대. 자신이 믿는 것만 받아들이며 그 믿음을 키워가는 시대. 가짜 전문가가 진짜 전문가를 구축(驅逐)하는 시대.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흔들어대는 시대. 사이비 과학과 사이비 역사가 득세하는 시대. 미신이 다시 창궐하는 시대.
지금 이 시대의 적나라한 민낯이 아닐까 합니다.  

 “의심하는 인간 (박규철 著, 추수밭)”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박규철 교수입니다. 박규철 교수는 철학 박사로  전공 분야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철학이지만, 고대 회의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통찰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적 병폐 중 하나인 확증 편향과 반지성주의에 대한 치료제로 철학적 방법론 중 하나인 회의주의 (懷疑主義, skepticism)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진리는 얻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것이라 말하며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회의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이야기합니다. 회의주의란 어떤 종류의 지식이든 참된 지식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어떤 명제라도 그것이 참임을 확신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철학적 방법론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회의주의자들은 삶이 주는 불안과 불행에서 벗어나는 길을 호모 두비탄스 (homo dubitans)라는 새로운 인간상에서 찾으려 했고, 이는 현대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주장합니다. 그들의 사회 역시 충분한 탐구 없는 아집과 독단, 교만에 빠져 있었기에 탐구의 종식 이전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회의주의가 사회 전체적인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 믿었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현대 한국에서 고대 그리스와 유사한 독단과 아집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정치, 경제, 종교 등 많은 사회적 영역에서 소통과 경청은 사라지고 독설과 장광설만 난무하는 독단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고 일갈(一喝)합니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치료하기 위해 고대 회의주의가 주는 통찰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역설(力說)합니다. 이미 고대에 그 생명이 다했다고 생각했던 고대 회의주의는 여러 시대를 통해 지혜로서 계승되고 발전되어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γνῶθι σεαυτόν)’며 무지의 자각을 강조하였습니다. 독단은 무지임을 알지 못하니 빠져나올 수 없는 무지의 감옥입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열쇠로 저자는 회의주의적 통찰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의 이해를 위해 고대 회의주의 의미에 대해 살피고 있습니다. 그 다음, 고대 회의주의를 이끈 대표적인 철학자인 아르케실라오스, 카르네아데스, 피론, 아이네시데모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주요 개념, 논증 방식 등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회의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확증 편향 시대에 접어든 현대에서 고대 회의주의의 활용에 대한 저자의 의견까지 나아갑니다. 

 이 책, “의심하는 인간”은 스스로 독단의 감옥에 갇히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고대 회의주의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독서가 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의심하는인간, #박규철, #추수밭, #청림출판, #책좋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