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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들의 방 (베로니카 오킨 著, 김병화 譯, 알에이치코리아, 원제 : The Rag and Bone Shop: How We Make Memories and Memories Make Us )”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베로니카 오킨 (Veronica O'Keane)입니다.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하는 신경학자이자 정신건강의학자로 30년에 가까운 연구와 임상 경험을 쌓아온 학자라고 합니다. 최근 저자의 연구와 관련한 대중서적을 출간했는데 이번에 읽은 “오래된 기억들의 방”은 그 중 하나입니다.

저자가 기억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디스라는 환자로부터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환자의 사연이 저자가 가진 기억에 대한 이해를 무너뜨리고 다시 만들어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한 병원에서 출산 전후에 정신과 질환을 앓는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그 때 만난 환자 중 한 명이 바로 이디스였습니다.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 후 이디스는 감정적으로 멍해졌고, 우울해지고 산만했지만 무엇 때문인지 말하지 않았던 환자였습니다. 묻는 말에도 반응하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얼굴. 정신병의 전형적인 특징인 ‘갇힌 (locked-in)’ 태도였다고 합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이 환각은 그들에게는 실제로 일어나는 진짜 감각 경험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감각 세계 속에 고립되고 갇히게 되는데, 이디스는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악마’라는 존재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이디스는 카그라스 증후군을 앓고 있었습니다. 즉 자신의 아이가 누군가 (이디스는 이 존재를 악마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꿔치기 했다는 믿음을 갖는 산후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이디스는 자신의 배우자 역시 사기꾼에 의해 대체되었으며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후 이디스의 정신병은 치료되었고, 이디스 자신이 정신병을 앓았음을 분명히 알았지만 그 때의 기억만은 진짜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이디스라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그녀의 기억이 독자적인 유기적 실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억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정은 다시 살아낸 경험으로 현재로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억은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유지하며, 인출하는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기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단순한 정보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누구인지 바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어디로 출근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바로 알게 되지요. 의식하지 못해도 우리는 ‘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억은 정신을 지탱하는 기둥이자, ‘나’라는 정체성과 고유성을 인식하게 하는 기초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기억을 만들어내고,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의 첫머리엔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영역본 제목이 ‘지나간 것들의 기억(Remembrance of Things Past)’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로 바뀐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신경학의 발전 과정에 대한 암시를 줍니다. 앞선 제목이 뇌 안의 고정된 저장고에서 기억을 수동적으로 소환해오는 것을 의미한다면, 바뀐 제목은 흘러가는 과거에 대한 능동적인 탐구를 의미한다고 말이지요. “오래된 기억들의 방”을 읽다 보면 왜 서두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기억들의방, #베로니카오킨, #김병화, #알에이치코리아, #책과콩나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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