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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원제 : さとり世代の魔法使い (2019년) 


 

ㅇ Review

  


마녀는 흔히 “추한 노파로서, 코에는 사마귀가 나 있고, 머리에는 원뿔형 모자를 썼으며, 빗자루에 걸터 앉아 째지는 목소리로 심술 사납고도 요란스레 웃어대는 여인” (제프리 버튼 러셀 著, 김은주 譯, 마녀의 문화사, 르네상스, 2004)으로 부정적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현대의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고대부터 원시 종교를 수행하던 무속인이나 이를 믿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를 악마 숭배와 연관지어 부정적인 인상을 덧씌운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이러한 이미지를 활용하여 종교의 이름을 팔아 수많은 (연구자에 따라 4만에서 수십만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을 마녀로 몰아 화형시켜버리고 맙니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캘리번과 마녀”(황성원, 김민철 共譯, 갈무리, 2011)에서 가부장적 권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지배계급이 여성을 탄압함으로써 피지배 계급 전체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하였습니다. 브라이언 르박 역시 “유럽의 마녀사냥” (김동순 譯, 소나무, 2003)에서 결국 대중이 마녀 이야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지배 계급의 의도에 따라 마녀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대중들에게 마녀의 만들어낸 부정적 이미지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 대중문화에서의 마녀는 그동안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백설공주의 사악한 왕비,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서쪽 못된 마녀와 같이 활용해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녀배달부 키키”(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스튜디오 지브리, 1989), “메리와 마녀의 꽃”(메리 스튜어트 著, 김영선 譯, 리틀북, 2017, 원제 : The Little Broomstick, 1971) 등과 같이 마녀를 순수한 마법적 존재, 즉 여성 마법사로 바라보는 경향성도 나타나게 됩니다. 



“가끔 너를 생각해” (후지마루 著, 김수지 譯, 아르테, 2020) 역시 그러한 경향을 이어받아 여성 마법사로서의 마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마녀인 19살의 대학생 호조 시즈쿠는 어렸을 적 시즈쿠는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녀로서의 삶을 꿈을 꾸었지만 10년 전의 사고로 할머니와 소타를 잃고 마녀의 삶을 포기하고 맙니다. 하지만 10년만에 나타난 소타와 함께 과거에 약속 했던 마녀의 사명을 함께하기 위해 마녀 재활을 시작합니다. 마녀의 사명이란 다른 사람의 행복을 도와주는 것. 소타와 함께 하나씩 미션을 수행하면서 과거부터의 비밀 역시 풀려나가게 됩니다. 시즈쿠의 할머니는 마녀는 “행복을 배달해주는 존재”로 정의하고 있습니다만 작중에서 시즈쿠는 소타와 함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새롭게 맺고 또 과거의 단절되었던 관계를 다시 만들어가는 것을 볼 때 마녀의 사명은 “관계의 회복”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옮긴이가 “깃털처럼 가볍기만” 한 소설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지만 “그런 편견을 보란 듯이 깨주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ps. 아마 원문이 그렇게 되어 있겠지만 어렸을 적 친구인데도 시즈쿠가 소타에게 시종 존대말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은 끝까지 적응이 안되네요.


ps. 엄숙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시뷰레의 예언서”가 시즈쿠에서 아이돌 트레이닝을 시키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후반부에 밝혀지네요. 




#가끔너를생각해, #후지마루, #김수지, #아르테, #마지막마녀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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