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시리즈 ‘귀경잡록’의 세번째 책, “외눈고개 비화 (박해로 著, 북오션)”을 읽었습니다.
‘귀경잡록’ 시리즈 설정의 핵심은 바로 도참비서 ‘귀경잡록’입니다. 이 책은 설정상 조선초 선비인 탁정암에 의해 저술되었다고 알려진 도참비서입니다.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오로지하는 우주의 창업자가 존재하고, 그 존재가 부리는 이계별천지의 원린자 (遠麟者)들은 이 인간세상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탁정암은 우국충정의 발로로 조선이 가장 경계할 대상으로 이 원린자를 꼽았는데, 그의 진심과는 다르게 이 책을 자신의 범죄나 사상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 “외눈고개 비화”는 이 가상의 도참비서, ‘귀경잡록’과 관계된 중편 두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외눈고개 비화
표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한 고을의 사또로 부임한 ‘나’를 ‘김정겸’이라는 고향 친구가 40 여년 만에 찾아온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같은 고향에서 나고 자라 스무 해를 어울렸지만 그토록 총명한 그가 이렇게 정신이 무너진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옵니다. 둘도 없는 벗이었지만 이제는 범죄자가 되어 떠돌아 다니고 있는 김정겸. 그런데 이 친구가 ‘귀경잡록’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토록 사리분별에 밝고 영특했던 그가 귀신의 요설에 빠지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정겸은 자신이 미치지 않았으며, 삼시 세끼 밥 먹는 일에만 쫓겨 진실을 외면하는 세상이 미쳤다고 일갈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상숭배
스물 여섯, 궂은 일이란 해본 적도 없던 양반 사대부인 권윤헌은 주상의 어명을 받아 함흥으로 향하던 중 산길에서 밤을 맞이합니다. 노숙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마침 민가 하나를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이 오두막, 뭔가 이상합니다. 비탈길에 세워진 것도 이상하고, 나무를 베어내지도, 돌을 치우지도 않고 집을 지어놨습니다. 그래도 노숙을 할 수는 없기에 주인을 부르지만 집주인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집 안에 서책이 가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권윤헌이 반가운 마음에 책을 들어 읽어보는데 여기 있는 서책들은 ‘만씨멸구유일승집’, ‘동국원린사초’, ‘서역신왕직설’ 등 동서고금을 막론한 사악함의 정수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책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욱 사악한 책, ‘귀경잡록’이 잔뜩 있었습니다. 분명 이 집은 이 이단의 서적을 필사해 유통하는 악당의 집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탈바가지를 쓴 정체 모를 사람. 성지에 무단 침입했다며 윽박지릅니다. 그리고 드러나는 진실.
이 책, “외눈고개 비화”의 저자는 박해로 작가입니다. 처음 박해로 작가를 만난 것은 “섬, 그리고 좀비 (황희, 박해로, 안치우, 펭귄, 백상준 共著, 황금가지)”에 수록된 ‘ 세상 끝 어느 고군분투의 기록’이었습니다. 그 후 러브크래프트가 표방한 ‘대항할 수 없는 미지에 대한 공포’, 즉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를 조선을 배경으로 변주한 ‘귀경잡록’ 연작 시리즈를 통해 호러와 SF 장르에서 자신 만의 영역과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작가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며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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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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