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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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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그 해 잠실야구장 개장 행사로 개최한 세계 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선동열 선수의 미국전 15탈삼진 승리 및 결승전 완투승,

김재박 선수의 개구리 번트, 한대화 선수의 역전 3점 홈런으로 한국은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하게 된다.

 

이때의 주역은 대학 1년생인 선동열을 필두로

최동원과 김시진, 임호균, 김재박, 이해창, 유두열, 장효조, 한대화 등이었다.

그중 대학생이었던 선동열을 제외하고  대부분 프로 구단에 입단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 이미 82년에 합류했어야 하는 선수들이지만

세계선수권대회를 대비하기 위해 실업과 군에서 잡아두고 있었다.)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우승으로 프로 야구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

최동원 선수는 전년도 5위팀 롯데에 입단하게 되는데 입단 첫해 총 38경기에 등판해서 9승 16패 4세이브 (방어율 2.89)라는 기대에 걸맞지 않은 성적표를 받게 되나

이는 당시 롯데(83년 시즌 최하위)의 전력이 완전하지 않아서 승운이 없었을 뿐

방어율로만 보자면 실제 그 해 우승팀인 해태 에이스 이상윤(20승 10패 6세이브 방어율 2.67)이나 김용남과 비슷한 수준의 훌륭한 데뷔 시즌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84년 시즌...

전년도가 장명부의 해였다고 하면 1984년은 최동원의 해였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전기리그에 롯데는 4위에 그쳤지만 후기리그에서 1위에 오르게되는데 이는 전적으로 최동원의 힘이었다.

총 100경기 중 51경기 출장에 27승 13패 6세이브 방어율 2.40

롯데가 전후기 거둔 모든 승수 50승의 66%(27승+6세이브)를 최동원이라는 한 사람이 거둔 성과였다.

 

그리고 시작된 코리안 씨리즈 

삼성은 김시진, 김일융, 황규봉 등 막강 원투쓰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타력면에서도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 이만수, 장효조 등 막강화력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만만하리라 생각하고 선택했던 롯데의 최동원에게 4승을 헌납하며 분루를 삼키게 된다.

 

패넌트리그 27승 6세이브로 팀 승리의 66%

코리안씨리즈 4승로 팀 승리의 100%

 

이게 바로 최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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