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은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계에 지능이 있는지를 판별하고자 하는 시험을 제안하면서 기계와 인간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언어적 행동이 가능한 기계는 지능을 가진 것을 보는 것이 타당하다 주장했습니다. 이를 튜링 테스트 혹은 이미테이션 게임이라 부릅니다.
지능. 익숙한 단어이지만 이를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인간이 가진 철학적, 윤리적 고민은 인공 지능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인간인 종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왔기 때문에 인간이 아닌 다른 종 혹은 다른 존재의 지능에 대해서는 그 고민의 깊이가 얕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인 지능인지, 무엇이 인간인지에 대한 사회 보편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그리고 ‘알파고’나 ‘Chat GPT’ 같은 인공지능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게 되면서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지능인지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형이상학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녹슬지 않는 세계 (김아직 作, 북다)”를 읽었습니다.
루치아. 금속뼈대, 인공관절, 흡사 마네킹을 닮은 얼굴을 가진 이 존재를 안드로이드라 말합니다. 폐기 처분을 받고 도망친 로봇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아니지만 천국에 가고 싶어하는 인공 개체입니다. 죽음 너머로 떠난 그분을 돌보기 위해. 루치아는 천국에 가기 위해 노사제로부터 병자성사를 받습니다. 병자성사는 그 자체로 유효한 것. (Ex opere Operato) 이제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레미지오. 루치아에게 병자성사를 행한 노신부입니다. 하지만 루치아에게 속았음을 알고 온갖 저주를 퍼붓습니다. 로봇은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의 천국’에는 기계를 위한 자리는 없는 것일까요? 자기인식이 가능한 기계라 하더라도 ‘인간이 아니기에’ 생명이 꺼지면 용광로에 던져지면 끝나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치아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루치아는 인간의 천국을 넘본 죄로 마녀로 규정됩니다. 이제 다시 마녀 사냥이 시작됩니다.
인간 만의 것을 넘본 존재. 그리고 인간이라는 범주의 확장 .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마녀 사냥. 이 소설은 독자에게 철학적 사유거리를 던져주는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인간을 규정하는 범주적 특징은 무엇일지, 비인간이 인간다움을 획득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소설을 읽는 내내 흥미로운 생각들이 교차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분위기이지만 박성환 작가의 단편 ‘레디 메이드 보살’이 연상되는 시간이기도 했구요.
#녹슬지않는세계 #김아직 #북다 #책과콩나무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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