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온난한 날들 (윤이안 著, 안전가옥)
근 미래. 이미 아열대 기후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플라스틱 배출량이 제한되고, 탄소 배출량 제한을 초과하면 탄소배출 감독관에 의해 벌점을 받는 시대. 에코시티 평택에 사는 ‘나’에게는 희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식물에 남은 사람들의 사념을 들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차라리 식물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라면 나을 텐데, 사람들의 원한이나 사념, 저주를 식물을 통해 듣는 것은 고역이기만 합니다.
이런 능력에다 남다른 오지랖을 자랑하고,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사건이 다가오는 것은 필연이 아니었을까요?
‘남 일에 함부로 끼어들지 마라’
아빠가 말한 바를 따랐어야 하는 건데.
아내와 딸을 애타게 찾는다는 칼국수 사장님에게 오지랖을 좀 부렸기로서니.
‘거짓말’
그래도 ‘내’가 저지른 오지랖에 대한 책임은 져야할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영천기도원’으로 향합니다.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 해준은 식물학자입니다. 어쩌다 시신 콧속에 남은 꽃가루를 분석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국내 1호 법의생태학자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법의생태학 연구소를 만들려고 했는데 돈도 없고, 연구비 지원 받기도 힘들어서 탐정사무소를 겸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식물학자이자 탐정인 해준은 딸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고 ‘영천기도원’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습니다. 사이비종교 집단은 건드리면 골치가 아프지만 월세 생각에 어쩔 수 없습니다.
해준의 눈에 이상한 여자가 하나 보입니다. 처음에는 사이비종교에 입문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납작 업드리더니 바닥을 기어다니기까지 합니다.
피해야 합니다.
주인공 주변에서 벌어지는 실종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사이비 종교 집단, ‘영천교’. 하늘 그 자체가 인격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신이 있고, 그 교주는 심지어 하느님의 대리자인 풍백이라고 합니다. 이런 짜깁기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날씨에 기반을 둔 종교인지라 기후위기가 현실화되면서 떠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온난한 날들 (윤이안 著, 안전가옥)”은 독특한 작품입니다. 기후위기가 현실화된 근미래를 다루고 있으면서 이야기는 미스터리라는 그릇을 통해 풀어냅니다. 윤이안 작가는 “SF 김승옥 (김승옥 外 共著, 아르띠잔)”에서 단편으로 만나본 적 있는 작가인데 이번에 연작 소설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2010년 대 이후 ‘기후 소설 (Cli-fi)’라는 장르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SF의 하위 장르 중 하나로도 분류되긴 하는데 SF적인 내용이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SF와 교집합이 있는 장르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 “온난한 날들”은 본격적인 기후 소설로 미스터리 장르와 SF 장르에 교집합을 둔 작품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후 위기로 인한 대재앙을 다룬 소설은 아닙니다. 비교적 소소한 일상의 불편함을 통해 기후의 변화로 인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면서 이로 인한 사람들의 의식의 변화도 함께 다룹니다. 작중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들 역시 지구급 대재앙에 비하면 소소합니다. 사이비 종교, 폭탄 테러범이라 할 지라도 말이지요. 그 괴리감이 정말 흥미롭고 설정과 이야기 구조를 통해 재미있게 풀어낸 작가의 역량이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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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